우리 당의 영광넘친 80성상의 빛나는 행로를 보여주는 국가도서전람회가 개막되였다.
《2024년 세계시청물유산의 날》을 맞으며 12월 5일 토론회가 인민대학습당에서 진행되였다.
우리 나라의 민족고전《무예도보통지》가 2017년 10월30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데 이어 천문도인 《혼천전도》가 2023년 5월2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5돐경축 국가도서전람회 개막식이 9월 7일 인민대학습당에서 진행되였다.
무엇보다도 고구려사람들이 돌을 리용하여 만든 구조물의 견고성을 통하여 알수 있다.
다음으로 고구려사람들의 우수한 력학적계산에 기초하여 구조물을 안전하게 축조한것이다.
대동강나무다리는 기초골조가 매우 세밀하고 견고하게 조립되였으며 그 규모 또한 방대한것으로 하여 당시의 우수한 교량건축발전상을 보여주고있다.
이 나무다리는 고구려사람들의 높은 건축력학적기술수준을 보여주는것으로서 통행로, 수송로의 한 부분으로 웃구조와 아래구조로 이루어졌다.
다리의 기본골조를 이루고있는 나무각재들은 통나무를 네모나게 다듬어 만든것이다.
이러한 나무각재를 석줄로 놓아 량쪽대안을 련결하고 골조와 골조사이에 가로골조와 보조골조를 배치한 다음 그우에 깔판을 깔아 통해부를 이루는 다리의 웃구조를 만들었다.
다음으로 고구려사람들의 구조결합과 구조물조립을 높은 수준에서 진행한것이다.
무엇보다먼저 피지배계급신분의 부역부과대상에 대하여 보기로 한다.
고려의 피지배계급신분으로는 일반량인과 향, 소, 부곡민, 노비 등이 있었다.
량인은 봉건국가의 기본착취대상으로서 그의 절대다수는 농민이였고 그밖에 수공업과 《천한》일에 종사하는 계층이 있었다.
향, 소, 부곡민들은 량인보다도 신분이 낮은 천민으로서 봉건통치배들로부터 더 심한 차별대우를 받는 부역부과대상이였다.
노비는 최하층의 천민신분층으로서 소속에 따라 공노비, 사노비, 사운노비 등으로 구분되였다.
다음으로 지배계급신분의 부역부과대상에 대하여 보기로 한다.
고려의 지배계급으로서는 왕족과 량반, 향리, 승려 등이 있었다.
왕족은 가장 높은 특권적인 신분층으로서 설사 왕과의 친척관계가 아주 멀어지는 경우에도 부역을 비롯한 온갖 국가적부담에서 면제되였다.
량반은 봉건국가의 관료가 될수 있는 특권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사회적특권을 가지고있었고 많은 토지와 노비를 가진 봉건지주로서 인민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하였다.
향리는 지방의 토착세력으로서 봉건통치를 직접 집행하는 착취자였다.
승려는 고려봉건국가가 불교를 기본통치사상으로 내세운것으로 하여 특별한 대우를 받는 특권신분층이였으므로 부역부과의 대상이 아니였다.
승려들이 봉건국가로부터 우대를 받은것으로 하여 많은 량인들과 노비들 지어 향리들까지 부역을 비롯한 봉건적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승려로 되군 하였다.
무엇보다도 노예소유자적경리는 자영소농민경리를 침식시키면서 확대되였다.
자영소농민경리는 생산수단인 토지에 대한 소농민적소유에 기초한 경리형태로서 자영이라는 의미는 생산수단 즉 토지에 대한 사적소유에 기초하여 자체로 독립적인 생산경영활동을 할수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토지가 기본생산수단인 우리 나라의 조건에서 자영소농민경리는 소유자적경리형태를 대표하는 주요경리형태로 되였다.
자영소농민경리는 적은 토지를 소유하고 자기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자작경리로서 토지소유관계에서 볼 때 소농민적토지소유형태에 기초한 소농민경리였다.
다음으로 노예소유자적경리는 공동체경리도 침식시키는 방법으로 확대되였다.
공동체경리는 토지에 대한 공동소유에 기초한 경리로서 경리운영은 공유지토지를 매개 단위 가족들에게 분여하여 자체로 생산하게 하고 수확물의 일정한 량을 공동체에 바치는 방법으로 하였다.
노예사회에서 공동체경리의 침식분해과정은 두 단계로 진행되였다.
첫 단계는 우선 이미 국가통치체계에 통합된 공동체들에서 노예소유자계급이 국가권력으로 과중한 공납제를 실시하여 공동체경리를 침식분해시키는 과정이였다.
둘째 단계는 공동체가 분렬와해되여가고 이로 하여 침식된 공동체경리가 노예소유자적경리에 흡수되여 재편성되는 과정이였다.
자료에 의하면 벼락이 칠 때 어느한 사람이 손전화기로 짧게 통화를 하였는데 손전화기의 액정화면이 터지였고 손전화기를 목에 걸고있던 한 사람은 벼락을 맞아 사망하였다고 한다.
연구사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 손전화기의 동작과정에 발생하는 전자기파가 《벼락을 잡는 》작용을 하기때문이라고 하고있다.
공공장소들에는 모두 피뢰장치가 설치되여있기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볼수 있지만 피뢰장치가 없는 장소(벌판, 바다 등)에서는 사람과 손전화기가 땅겉면에 로출되여있기때문에 손전화기가 소낙구름의 방전대상으로 될수 있다.
만일 벼락이 치는 날에 손전화기전원을 켜놓으면 손전화기는 벼락을 쉽게 유도하게 된다. 따라서 벼락이 칠 때에는 손전화기의 전원을 차단하는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관모장식을 통하여 알수 있다.
발해유적에서 알려진 세가닥으로 된 관모장식은 고구려유적에서 나온 관모장식과 같으며 다른것이 있다면 무늬구성과 장식수법이 좀 다를뿐이다.
다음으로 귀걸이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고구려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태환식귀걸이가 발해에 그대로 계승되여 만들어졌다.
다음으로 비녀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고구려비녀에서 보이는 짝지발모양과 《U》자모양의 두가닥비녀가 발해비녀에서도 보인다는것은 고구려사람들의 머리꾸밈에 널리 리용된 두가닥비녀가 그대로 발해에 계승되였다는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