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대학습당 홈페지 - 《남산》

김정은장군 목숨으로 사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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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 모시고 기어이 돌아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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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다오 그리운 내 마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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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내리는 눈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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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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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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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선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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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풍파넘어 다시 만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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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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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무용 《봉죽춤》의 력사적연원과 그 형상적특징

민속무용 《봉죽춤》의 력사적연원과 그 형상적특징

민속무용 《봉죽춤》의 력사적연원과 그 형상적특징

봉죽은 사람의 키 두배가 넘는 긴 참대우에 벼짚으로 또아리를 만들어얹고 그끝에 긴 꿩털을 수십개 꽂아 장식한 다음 거기에 8~12오리의 긴 천을 달아 드리운것이다.

봉죽띠는 오색끈으로 하기도 하고 흰천으로 하기도 하는데 명주나 세모시와 같이 발이 가늘고 잘 나붓기는 천이 사용되였다.

봉죽놀이는 정월대보름을 비롯한 민속명절때도 온 한해동안 풍년이 들고 고기가 잘 잡히기를 바라면서 진행되군 하였다.

봉죽놀이에서 이채로운것은 풍어를 바라거나 경축하는 어부들의 마음을 담아 추어진 《봉죽춤》이다.

정월대보름날의 봉죽놀이는 해변가의 펑퍼짐한 모래불에서 진행되는데 이른저녁 풍물잡이들의 풍악소리가 울리면 명절옷차림을 한 어촌마을사람들이 모여든다.

사람들이 모이면 먼저 선소리군이 봉죽대가 세워진 춤판 한가운데로 뛰여들어 《봉죽타령》을 선창한다.

선소리군의 청청한 노래소리에 사람들이 받아웨치면서 어부들은 흥이 나게 춤을 춘다.

가무놀이가 고조되면 젊은 어부들이 춤판의 중심에 세운 봉죽대주위로 모여들어 봉죽띠를 잡고 《봉죽춤》을 추며 놀이분위기를 한층 돋군다.

《봉죽춤》은 어부들이 봉죽띠를 손에 잡고 그것을 뿌리면서 추는것이다.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건드러지게 춤을 추던 춤군들은 잦은굿거리로 음악의 속도가 당겨지면 점차 봉죽띠를 힘차게 뿌리면서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이어 장단이 타령장단으로 바뀌여지면 춤군들은 깊이 굽혀앉았다가 뛰여일어나면서 봉죽띠를 더 높이 뿌리치거나 두명씩 짝을 무어 돌아가며 흥취를 돋군다.

잦은타령으로 음악이 더욱 빨라지면 춤군들은 껑충껑충 뛰여돌아가면서 힘있는 률동으로 어부들의 억센 의지를 담아 활달하게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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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가락이 특색있는 《삼동동어깨춤》

춤가락이 특색있는 《삼동동어깨춤》

춤가락이 특색있는 《삼동동어깨춤》

《삼동동어깨춤》은 평안도 성천지방 인민들의 생활속에서 창조되여 널리 추어진 민속무용이다.

성천지방에는 성천담배, 성천약밤과 같이 유명한 특산물들이 많을뿐 아니라 《삼동동어깨춤》, 《성천길쌈춤》과 같이 흥겨운 춤들이 적지 않게 알려져있다.

《삼동동어깨춤》은 비류강류역 마을들에서 발굴되였는데 농업로동의 성과를 바라는 민속명절놀이마당이나 기우제를 비롯한 신앙의식때 추어지군 하였다.

민속놀이의 흥겨운 춤판들에서 추어지던 춤가락들에는 농업로동생활뿐 아니라 부모들의 뒤를 이어 이 땅을 가꾸어가는 청춘남녀들의 사랑의 감정과 세속적인 생활도 반영되여있어 더욱 흥취를 돋군다.

춤판에서 특색있는것은 손목, 팔굽, 어깨를 순차적으로 놀리면서 수행되는 춤동작들이다.

삼동동이란 명칭도 팔놀림을 세번 꺾어 절주를 강조해주는 춤동작형상으로부터 불리운것이다.

팔동작은 두팔을 동시에 놀리면서 혹은 한번씩 번갈아 수행하기도 하고 서로 마주서거나 등을 지고 또는 한바퀴 돌아가면서도 수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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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유산-조선옷차림풍습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유산-조선옷차림풍습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유산-조선옷차림풍습

조선옷차림풍습은 우리 인민의 생활에서 한부분으로 되여 부단히 계승발전되여왔다.

조선옷은 독특한 형식과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조선옷은 고대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자기의 본태를 잃지 않으면서도 민족옷으로서의 면모를 확연하게 갖추게 되였을뿐 아니라 부분구조들이 더욱 아름답게 다듬어지고 시대에 맞게 여러가지 형태로 변화되면서 자기발전을 이룩하였다.

그중에서도 녀성들이 입는 조선치마저고리는 조선녀성들의 몸매에 잘 어울리면서도 계절적차이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색조화도 고상하다.

옷감의 기본재료는 주로 비단이나 모시, 면과 같은 자연섬유이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민족옷을 우아하면서도 아름답게 지어입었을뿐 아니라 거기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아이들이 태여나 첫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날에는 첫돌상을 차려주고 자식에 대한 축복의 마음을 담아 곱게 지은 색동옷을 입혀주었다.

또한 신랑신부는 호상존중과 사랑,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마련한 옷감을 교환하여 민족옷을 지어입고 결혼식을 하였으며 부모의 60돐생일날에는 존경과 건강장수를 바라며 자식들이 민족옷을 마련하여주는것이 고상한 륜리로 되였다.

이처럼 우리 인민의 정서와 감정을 반영한 조선옷차림풍습은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문화유산들가운데서 특출한 자리를 차지하며 조선옷은 독특한 형식과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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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외교활동가 사명당

의병장, 외교활동가 사명당

의병장, 외교활동가 사명당

사명당은 임진조국전쟁시기 중출신의 의병장이며 외교활동가이다.

사명당은 어려서 중이 되여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였으며 불교 선종의 교리를 통달한 중으로 이름이 났다.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난 후 왜놈장교가 이끄는 침략군의 한 무리가 금강산의 유점사를 비롯한 절간들에 침입하여 방화략탈을 감행하자 사명당은 직접 적진에 들어가 불교도의 립장에서 적장에게 함부로 인명피해를 내지 말것을 강경히 요구하였다.

그후 묘향산에 있던 서산대사가 전국의 중들에게 왜적을 쳐물리치는 싸움에 일떠나설것을 호소하자 사명당은 이에 호응하여 700여명의 중들로 의병부대를 무어 고성읍에 들어가 군기고의 병장기들을 꺼내여 무장시키고 평안도 순안 법흥사로 달려왔다.

당시 스승인 서산대사가 승병도총섭(중들로 조직된 의병 총대장)으로 임명되였으나 늙었으므로 사명당이 부총섭으로서 실지 승병을 지휘하였다.

학식이 높고 지략이 있었으며 대담하고 애국심이 강하였던 사명당은 1594년 봄부터는 우리측 군영의 대변자로서 정찰활동, 화의교섭 등의 중책을 맡고 여러 차례 적진속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그는 능숙한 외교활동으로 놈들의 오만무례한 침략행위를 규탄하였으며 적장들사이의 모순을 리용하여 적의 력량을 분산시켜 놈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사명당은 중의 몸이였으나 의병장, 외교활동가로서 임진조국전쟁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러므로 후세에도 송운대사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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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화상때 긴급처치법

가정에서 화상때 긴급처치법

가정에서 화상때 긴급처치법

흔히 사람들은 화상을 입게 되면 당황해하는데 우선 덤비지 말고 그 부분을 식혀야 한다.

어린이들은 피부가 부드럽기때문에 옷을 입은 상태에서 뜨거운 물을 들쓴 경우에는 덤비면서 옷을 벗기느라 하지 말고 먼저 식히고 침착하게 덴 부위가 아프지 않게 천천히 옷을 벗긴다. 만일 피부에 딱 붙는 옷을 입었을 경우에는 벗기려고 하지 말고 가위로 베는것이 좋다.

다음 물에 적신 김을 상처에 붙인다. 그러면 화상이 아문 뒤 흠집이 남지 않는다. 물에 적신 김은 아픔을 멈추는데도 효과가 있다.

깊이 데였을 경우에는 김을 여러겹 붙이면 좋다. 한번 붙여주는것으로 안심되지 않으면 다음날 그 우에 다시한번 붙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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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단련을 위한 9가지 습관

뇌단련을 위한 9가지 습관

뇌단련을 위한 9가지 습관

① 아침에 일어나서 1h이 지난 후 식사를 한다.

② 여러가지 일들을 묶어서 생각해본다.

③ 사무원인 경우 1h에 한번씩 자리에서 일어난다.

④ 점심식사를 한 다음 낮잠을 조금 자거나 이야기를 한다.

⑤ 눈을 감고 물건을 만지는 방법으로 촉각을 자극한다.

⑥ 사색의 방향을 바꾼다.

⑦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손을 의식적으로 쓴다.

⑧ 평상시와 다른 길로 퇴근한다.

⑨ 잠자기 전까지 무엇인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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