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남이

애국명장 남이(1441―1468)는 15세기중엽의 젊은 장수이다.

태종의 시위인 의산위 남휘의 아들이다. 본은 의령, 시호는 충무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잘하고 특히 무예를 련마하여 검술에 능하였다. 전하는데 의하면 그의 칼쓰기재주는 신묘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소나기가 쏟아붓는대도 칼춤을 추면 비를 맞지 않았으며 큰 은행나무의 잎들에 칼자리를 두금씩 어김없이 그었다고 한다.

무술이 뛰여나고 군사에 통달한 그는 17살때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남이는 1467년 9월에 변방을 자주 침입하여 서북국경일대를 소란스럽게 하던 건주위녀진침략자를 징벌하는 싸움에 나섰다.우상대장의 임무를 맡은 그는 부대를 지휘하여 만포에서 압록강을 건너 파저강류역의 건주위녀진을 공격하여 많은 적들을 살상포로하였다.그는 이 싸움에서 젊은 장수로서 용맹을 떨치였다.

그는 녀진징벌의 길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시를 지어 후세에 남기였다.

백두산석 마도진(백두산의 돌은 칼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수 음마무(두만강의 물은 말먹여 다 말리리)

남아이십 미평국(사나이 스무살에 나라평정 못하면)

후세수칭 대장부(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러주랴)